전쟁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었던 나라 조선. 안일한 자기 위안에 빠진 관리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들이 전쟁에 휘말린다. 악귀 같은 왜군들에 짓밟히는 죄 없는 민초들의 처참한 죽음을 그저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사명은 이미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신분의 귀천을 떠나 인간의 존엄을 아는 수행자였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불살생의 교리를 가장 앞세우는 스님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명은 고뇌에 빠진다. 살생을 일삼는 무리들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했다. 죽은 백성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은 채, 부처님께 용서를 구하며 칼을 들었다. 오직 백성들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명은 이렇듯 처절하게 임진왜란의 전면에 등장한다.
그리고 400여 년이 흐른 2023년, 사명대사(四溟大師, 1544~1610)의 고향 밀양에서 태어나 이름난 피디(PD)로, 작가로 활동하던 이상훈이 펜을 들어 사명의 칼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사명대사의 칼, 포검비(抱劍悲)’ 장편소설 <칼을 품고 슬퍼하다>이다,
소설은 사명의 어린 시절, 천재 소년으로 불리던 응규의 첫사랑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사랑아랑과의 가슴 뛰는 사랑도 잠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아랑과 어릴 때 잃은 형제, 그리고 부모의 죽음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던 사명은 출가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다. 자신을 짝사랑하던 미옥을 끝내 뒤로한 채.
조선은 유학을 숭상하는 나라였다. 그런 조선에서 스님의 길로 들어선 사명은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고 승과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한다. 그러나 스님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의 학문의 깊이를 알아본 사대부들과 시문을 나누고 우정을 나눌 뿐.
그러던 중 임진왜란의 거친 물살이 조선을 덮친다. 내란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으로 눈을 돌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군은 잔인하게 미쳐 날뛰었다. 값으로 매겨져 왜군의 수익이 될, 코가 잘린 백성의 시신이 산을 이루고, 노예상들에게 팔기 위해 끌고 간 어린아이와 여인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곡식은 물론이거니와 서책들마저도 훑어갈 정도로 조선의 산하는 왜군들에 의해 피폐해져 갔다. 사명은 조국의 현실에 더 이상 눈 감고 있을 수 없었다. 승군 대장으로 떨쳐 일어나 왜군과 맞섰다.
승장(僧將)으로서의 사명은 유학을 신봉하는 조선 사관들이 기록해 놓은 것보다 훨씬 뛰어난 전쟁 영웅이었다.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의 목을 움츠러들게 한 “그대 목이 조선의 보배”라는 일갈처럼 사명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종횡무진 눈부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 어떤 전투의 그 어떤 승리보다 참으로 값진 것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에 대한 사명의 측은지심이었다.
오직 자신의 권세만을 누리려는 조선의 권력자들이 외면해 온 조선인 포로들을 위해 사명은 거침없이 적의 소굴로 들어갔다. 일본의 많은 적들이 사명에게 글 한 줄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사명의 가르침을 받으려 머리를 조아렸다. 사명은 무도한 일본의 적들에게 결국 문(文)이야말로 무(武)를 이기는 진리임을 설파하고, 그들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리고 끝내 1500명에 달하는 조선 백성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이상훈 작가의 결론이다. 사명대사는 ‘살아 있는 부처’에 다름 아니라는 것. 임진왜란에는 이순신만이 아니라 ‘사명’이라는 영웅도 있었으며,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에겐 사명이 곧 살아 있는 부처님이었다는 것이다.
KBS PD 출신으로 SBS와 채널A 등을 거치며 많은 히트작을 낸 이상훈 작가는 이번 소설 ‘칼을 품고 슬퍼하다’로 천재작가 최인호 역사소설의 맥을 잇고 있다는 찬사를 받았다. 소설가 정찬주 작가는 추천사를 통해 “최인호 작가가 즐겨 썼던 현실의 틀 속에서 과거 역사를 담는 액자소설 형식이 바로 그것”이며,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무슨 스토리를 원하고,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듯하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장면들이 선명하고 스토리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조선 백성을 구한 사명대사야말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영웅임을 거듭거듭 자각하리라고 확신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