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면 신문사에서는 각 분야의 한 해 결산 특집을 한다. 올해의 불교출판은 어떠했을까? 어떤 책들이 나와서 독자의 사랑을 받았고, 많이 판매되었을까?
올해 출판된 불교 서적 가운데 가장 많이 출판된 책은 스님들의 책이다. 스님들의 말씀, 에세이, 법문집, 이야기, 자서전 등등. 작가가 고승에 대하여 쓴 책, 또는 스님이 직접 쓴 책인데, 이렇게 스님들에 관한 책이 많이 출판되고, 판매 역시 다른 책보다 높은 것은 개인적인 팬들이 있고, 불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또한 뭐니 뭐니해도 여전히 스님들에 대해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스님 필자로 대표적인 분은 법륜스님, 법상스님, 자현스님, 문광스님, 광우스님, 정목스님 등이다. 법륜스님 책은 입적하신 법정스님처럼 나오면 베스트셀러가 되고, 법상스님 책도 많은 독자와 팬들이 있다. 교리적 받침도 탄탄하고, 유튜브 활동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올해 가장 화제가 되었던 책은 향봉스님의 <산골 노스님의 화려한 점심>이다. 향봉 스님은 70년대 등단한 문인으로 수필집 <사랑하며 용서하며>가 60만 부 이상 판매되었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지금은 70대 중반의 노승이 되었지만, 필력은 여전히 40대 같은 필치이다. 이 책은 ‘산골 노스님의 초라한 점심’이 아니고 ‘화려한 점심’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고 할 수 있다. 내용도 가식 없는 솔직한 자기 이야기였고, 감추거나 미화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또 파격적인 내용도 적지 않았다.
너무 고차원적인 법문이 아닌 중생과 호흡을 같이 하는 글, 공감하는 글, 살결을 파고드는 문필력과 내공을 갖춘 스님들의 글이라면 새로운 독자층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편 불교 명상법과 관련된 책들도 여전히 많이 출판되고 있다. 이는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해소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방법으로 불교 명상법이 여전히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와 심리학을 융합한 책들도 많아졌다. 불교의 지혜와 심리학의 이론들을 결합하여 현대인들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의 가르침이 현대인들에게도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책들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꾸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사찰 답사서, 기행서, 불교미술이나 문화 등을 다룬 책들도 여전히 불교출판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과 불교출판협회에서 해마다 주최, 주관하는 불교출판 문화상에서 대상을 받는 책의 50%는 대부분 불교문화 관련서이다. 이러한 책들은 불교의 역사와 문화, 전통 등은 물론, 불교의 다양한 측면을 알아가는 데 기여하고 있고, 불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불교문화서는 대부분 시각적으로 사진을 수록한 컬러이고, 필자들 역시 이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또 다른 책에 비해 글쓰기도 쉽고, 독자들이 읽기 쉽다는 점도 사찰 문화, 기행서가 많이 출판되고 있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출판 및 전자책 시장이 확대되면서, 불교 서적도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 형태로 출시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근래 몇 년 사이 경전 번역의 특징은 한역 경전이나 논서 번역들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중적으로는 한역 경전 번역보다는 빠알리(팔리) 경전 번역서들이 더 독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빠알리 경전 번역서들은 교훈적이면서도 뜻이 분명하고 쉽다는 점이다. 대림스님, 각묵스님, 마성스님, 이중표, 전재성, 이미령 선생 등이 빠알리 경전 전법사가 되어 열심히 강의하고 있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화엄경과 관련된 방대한 전집들이 출판되고 있다. 이는 화엄경 바람을 일으킨 무비스님의 역할이 가장 크며, 오래도록 동학사에서 화엄경을 강의한 일초스님, 그리고 화엄 전공자인 전 동국대 교수 해주스님의 역할이다. 올해 돋보이는 번역서는 영곡스님의 <천성광등록>(5권)과 조병활 박사의 <조론연구, 조론오가해>(6권)이다. 이는 모두 초역으로서 얼음 속에서 핀 꽃이다.
조론연구 조론오가해(전 6권) (jbbook.co.kr)
반면 불교 교리서, 개론서, 입문서, 교양서 등은 출판이 저조한 셈이다. 이 분야는 불교 교리에 대한 내공이 높아야 한다는 점과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보다 쉬운 언어로 써야 한다는 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불교 개론서, 교리서, 입문서가 출판되어야만 불자들의 독서율도 높일 수 있다. 이 분야의 책은 20년 동안 한 번도 불교출판문화상에서 대상을 받은 적이 없다.
조계종 전문서점 ‘향전’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까지 출판된 불교 서적은 약 475종이고 12월 말까지 출판될 책들을 포함한다면, 그리고 향전에 없는 책도 있다고 상정했을 때 올해는 약 550종쯤 될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 250종과 비교하면 200% 증가했고, 불교출판 시장도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독자층은 증가하지 않는데, 공급은 과잉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 불자들의 평균 불서 독서량은 1, 2권에 불과하다. 이웃 종교인 기독교와 비교하면 10분의 1 정도이고, 서점 종교 코너에서 불교 서적이 차지하는 공간도 10분의 1 정도이다. 이는 일본과 꼭 반대라고 보면 된다. 일본 대형서점 종교 코너에 가면 기독교 서적은 많아야 두세 칸 정도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불교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7, 8년 전 교보문고 측에 종교 서적 코너 진열장 평준화 문제를 강하게 항의한 적이 있다. 답변은 불교책이 많이 판매되면 매장도 넓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올해의 세종도서 종교 부분 37종 가운데 불교 서적은 4권이 선정되고 기독교 서적은 30권이나 선정되었다. 종교 학술 부분에서도 기독교 13권, 불교 4종으로 기독교 편중이 심했다. 출판만이 아니라 각 분야마다 기독교 편중은 심화 되고 있다. 불교출판협회에서는 합리적이면서도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 기독교(개신교) 편중 현상은 오래되었다. YS정부 때부터 득표 작전의 하나로 시작되었고, MB정부 때는 광적이어서 온 나라를 하느님(개신교)에게 바칠 듯이 했다. 종교와 정권이 붙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 내부적으로는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 부족에도 원인이 없지 않다. 그리고 7, 80년대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잠수하면서 기독교, 천주교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들이 정계에 들어온 이후 팔은 밖으로 굽지 않고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 같은 격언이었다.
앞으로 불교도들은 개인적인 수행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사회적 역할에 더 힘을 써야 한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아픔, 눈물을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여러 역사적 사건에서도 볼 수 있다. 귀감으로 널리 알려진 회창 폐불사건을 간단히 들고자 한다.
당 무종의 회창 폐불사건(842-846)으로 중국불교는 폐허가 되었다. 4-5년 동안 중국 사찰 44,000여 개 가운데, 90%인 40.000개가 폐사되었고, 스님 26만 9천 명 가운데 97%인 26만 명이 강제로 환속을 당했다. 846년 4월 무종이 32세로 죽자 선종(宣宗)이 즉위했다.
무종과 선종은 숙질간(무종이 조카)이었다. 무종은 평소부터 선종이 황제 자리를 탐하고 있다고 증오했다. 무종은 몰래 시종들을 시켜 선종을 장작 패들이 두들겼다. 중국이 넓고 넓었지만, 선종이 갈 곳은 없었다. 이곳저곳 선종사원을 전전하면서 연명했다. 그런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자신을 보살펴준 불교와 선종사원의 은혜를 망각할 수가 없었다. 즉시 폐불령을 철폐했고, 각별히 선불교에 대해서 배려했다. 그 후 선불교가 중국 종교계를 석권했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보고 못 본 척하는 것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
[불교신문 3800호/2023년12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