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비평이론에서 불교의 위치는 잘 보이지 않는가? 이 책은 불교에 대한 고전적, 문헌학적 연구가 아니라 변화하는 현대사회와 비평이론의 장에서 불교의 역할을 탐구한다.
1.
이 책은 마커스 분, 에릭 캐즈딘, 티머시 모턴이 쓴 Nothing: Three Inquiries in Buddhism(Chicago: The University Press, 2015)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우리말 제목은 원문 제목과 조금 다른 『무에 대한 탐구—불교와 비평이론』으로 되어 있는데, 원문에는 없지만 역자가 책의 제목에 “비평이론”이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는, 사실 이 책은 “비평이론에서 불교의 위치”를 묻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비평이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요구된다.
이 책은 미국 시카고 대학 출판부의 유명한 트리오스(TRIOS)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판되었다. 이 시리즈는 불교를 포함하여 주로 문화이론, 비평이론, 그리고 철학을 전공한 이론가들이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적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책 또한 비평이론과 문화이론을 전공한 세 명의 저자들(모두 영문학과 비교문학, 비평이론을 전공한 연구자들이다)이 불교가 오늘날의 비평이론과 문화이론, 나아가서 현실정치적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를 추적한다.
2.
이 책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즉, 동시대 비평이론은 기독교와는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지만 불교에 대해선 애초에 그러한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하지 않았으며, 불교가 오늘날의 현실적 곤경과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이론적, 실천적 가능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에서의 불교의 부재는 놀라운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무(無, nothing)는 불교의 본질적인 개념일 뿐만 아니라 헤겔과 마르크스에서부터 해체, 생태이론, 사변적 실재론에 이르기까지 현대 비평이론에서 핵심적 개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제기하는 주된 질문은 “왜 비평이론과 문화이론에서 불교의 위치는 잘 보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불교는 무와 공을 통해, 연기와 인연을 통해 초월성이 아니라 내재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이론적 가능성을 제공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평이론과 철학의 장에서 불교가 제대로 논의된 적이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불교와 비평이론의 관계를 탐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면서, 불교가 비평이론과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또한 할 수 있음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고 발굴한다.
이 책은 비평이론에서 불교의 “무(無)”, 즉 공(空)의 이론적 가능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마커스 분은 불교와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의 일반경제 개념을 통해 불교와 경제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한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뛰어넘을 정치적 실험과 가능성을 불교와 비동맹 정치와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고 있고, 에릭 캐즈딘은 불교와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인 깨달음, 혁명, 치료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것, 즉 자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아와 사회의 변혁과 해방을 모색하는 방법을 궁구하고자 하는 시도들을 살펴본다. 티머시 모턴은 서양철학과 미학이론 내에 존재하는 붓다공포증의 근원을 파헤침으로써 서양철학의 한계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불교의 급진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처럼 이 세 편의 글들은 불교와 비평이론 간의 관계를 사고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열어 준다.
3.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불교와 비평이론 간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탐구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이 실제로 부딪혀온 현실적 맥락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인 적응력이 있는지를 탐구한다는 것이다. 가령 불교와 자본주의, 불교와 비동맹 정치학 간의 관계를 통해 불교가 단순히 종교적 교리나 이론이 아니라 근대의 세속적 현실이나 근대성과 타협하고 그것을 돌파해 나가려는 이론적 시도였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불교와 현대 비평이론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기존의 관점이나 접근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법을 보여줄 것이다.
- 지은이 마커스 분 Marcus Boon
캐나다 토론토 요크대 영문학과에서 가르치며 현대문학, 비평이론, 비교 미학, 소리와 진동 및 에너지 연구, 글로벌 아방가르드와 반문화의 역사와 철학 및 학문 전반에 걸친 실천 개념, 복제의 이론과 실천, 불교와 근대성과의 관계 등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는 The Road of Excess: A History of Writers on Drugs (Harvard UP, 2002), In Praise of Copying (Harvard UP, 2010)〔『복제 예찬』, 홍시, 2013〕, The Politics of Vibration (Duke UP, 2022) 등이 있으며, 현재 On Practice: Aesthetics After Art를 집필 중이다.
- 지은이 에릭 캐즈딘 Eric Cazdyn
캐나다 토론토 대학 비교문학과에서 가르치며 비평 및 문화이론, 동아시아 문화사, 현대 일본문학, 일본영화,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의학연구 등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는 The Already Dead: The New Time of Politics, Culture, and Illness (Duke UP, 2012), After Globalization (with Imre Szeman, Wiley-Blackwell, 2011), The Flash of Capital (Duke UP, 2002) 등이 있고, Trespasses: Selected Writings of Masao Miyoshi (Duke, 2010), Disastrous Consequences (SAQ, 2007)를 편집했다.
- 지은이 티머시 모턴 Timothy Morton
미국 라이스 대학 영문학과의 리타 시어 거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생태 문화이론, 환경인문학, 젠더와 섹슈얼리티, 동물연구, 포스트휴머니즘 등에 관심이 있다. 특히 객체지향 존재론을 생태학과 연결하여 생태적 각성과 저월(subscendence)의 상상력과 관련된 독창적인 사유를 보여주는 이론가이다. 저서로는 Being Ecological (Penguin, 2018)〔『생태적 삶』, 앨피, 2023〕, Humankind: Solidarity with Nonhuman People (Verso, 2017)〔『인류: 비인간적 존재들과의 연대』, 부산대출판문화원, 2021〕, Realist Magic: Objects, Ontology, Causality (Open Humanities, 2013)〔『실재론적 마술』, 갈무리, 2023〕 등이 있다.
- 옮긴이 김용규 Yong-gyu Kim
부산대 영문학과에서 가르치며 문화비평이론, 탈식민주의, 유럽지성사, 세계문학론 등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는 『혼종문화론』(2013), 『문학에서 문화로: 1960년대 이후 영국 문학이론의 정치학』(2004)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인류: 비인간적 존재들과의 연대』, 『멀리서 읽기: 세계문학과 수량적 형식주의』, 『문화연구 1983』, 『글로벌/로컬: 문화생산과 초국적 상상계』 등이 있으며, 『경계에서 만나다: 디아스포라와의 대화』, 『번역과 횡단: 한국 번역문학의 형성과 주체』, 『세계문학의 가장자리에서』, 『대담집: 재일디아스포라의 목소리』를 공동 편집했다.
차례
발간사·5
- 서론 — 9
- 마커스 분, 에릭 캐즈딘, 티머시 모턴
- 유리 집에 사는 것은
최상의 혁명적 미덕이다 — 39
마르크스주의와 불교, 그리고 비동맹의 정치학
- 마커스 분 Marcus Boon
- 깨달음, 혁명, 치료 — 151
프락시스의 문제와 미래의 급진적 무
- 에릭 캐즈딘 Eric Cazdyn
- 붓다공포증 — 253
무와 물에 대한 두려움
- 티머시 모턴 Timothy Morton
용어설명·371 / 찾아보기·391 / 역자 후기·399
발행일 | 2024. 12.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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