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립문자, 교외별전’을 표방하며 수행을 통한 체험을 중시하는 선과, 언어를 통하여 세계와 수행의 과정을 체계화하고 설명하는 유식은 어떻게 회통 가능한가!
1.
인도에서 전 세계로 퍼진 불교는 ‘일의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다양한 가르침’의 양태로 전변되어 왔다. 그중 유식불교는 중관불교(中觀佛敎)와 함께 인도 대승불교의 두 기둥 가운데 하나로, 미륵(彌勒)에 의해서 정초되고 세친(世親)에 의해서 완성된 인도 교학불교의 최종적 열매이다. 한편 선불교는 초조인 달마로부터 중국의 육조 혜능에 의해 완성된 깨달음의 가르침으로, 대표적인 수행불교이다. 그렇다면 선불교와 유식불교는 전혀 다른 것인가? 불교라는 큰 바다 속에서 둘의 관계는 어떠한가?
선에는 돈오(頓悟)라는 언어도 있는 것처럼, 이 세계에서 곧바로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유식에서는 어떠한 수행자도 초발심에서 부처가 되기까지 삼대아승기겁의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식에서 불도(佛道)는 신심(信心)으로 시작하는데, 선은 대의단(大疑團)을 일으키라고 말한다. 사정이 그와 같다면 선과 유식은 대조적이자 대극적이며, 오히려 서로 허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조차 한다. 과연 이 두 불교를 비교하고 참조하여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까?
이 책은 상반된 입장에 있는 듯한 선과 유식이 대승불교라는 큰 흐름 안에서 같은 지향과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다양한 각도에서 탐구한다.
2.
이 책에서는 불교의 중요한 두 가지 사유체계이자 수행체계인 유식불교와 선불교의 특징과 차이점, 그리고 이 둘을 바라보는 중도적 관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유식불교는 일체는 ‘오직 식(識), 즉 마음의 현현에 지나지 않을 뿐 인식되는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사유체계이며, 이 식을 지혜로 되돌려 고통을 소멸하고자 한다. 즉 분별을 본질로 하는 식을 무분별을 본질로 하는 지(智)로 전변하는 것이다. 전식득지가 곧 해탈이며 부처인 것이다. 그런데 전식득지의 길은 돈오(頓悟)가 아니라 지난한 점수(漸修)이다. 삼대아승기겁의 수행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불교는 전식득지의 길, 해탈의 길, 성불의 길을 지난한 점수의 과정이 아니라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돈오의 과정으로 제시한다. 견성성불이란 자신을 보는 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견성이 곧 성불인 것이다. 선불교는 언어문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기 때문에 유립문자(有立文字)가 아니라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했으며, 이교전교(以敎傳敎)가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했던 것이다. 선불교는 더욱더 직절하게 마음이 곧 부처, 심즉불(心卽佛)이라 선언한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이 두 불교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먼저 이 둘은 진실한 자기를 규명하는 길이라는 측면에서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유식도 선종도 원래는 같은 좌선이다. 따라서 근본에서는 다를 수가 없다. 돈오점수(頓悟漸修)를 표방하고 견성한 뒤에 더욱 수행해 가는 길을 말하는 선과, 견도의 지위에서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실현한 뒤 십지(十地)의 수행을 완수하여 부처[佛]가 되는 길을 설하는 유식은 본질에 있어서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선은 체험을 중시하고 그 체험의 한가운데서 언어를 발화한다. 체험을 체험 그대로 무엇인가 표현하려고 한다. 한편 유식은 체험한 세계를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설명을 하고, 나아가 전체적으로 체계화하려고 한다. 거기서 논리적 객관성을 추구하여 만인이 수긍하는 불도(佛道)를 수립하고자 한다. 그러나 선은 체험의 직접성을 중시하고, 설명으로 이행되게 되면 그 핵심에서 멀어지리라는 것을 우려하여 피하려고 한다. 무분별지를 무분별의 세계 그대로 직접 전하고 체험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차이가 양자 사이에는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양자는 본래 타자를 필요로 한다. 즉 선과 유식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손을 잡고서 불도의 본의를 규명해야만 하는 것이며, 서로 대립하기보다 상호 보완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이처럼 유식불교와 선불교는 부처가 되는 것이 궁극이며, 다만 그 관점과 방법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점수와 돈오, 유식과 선은 둘이 아니면서 또한 하나도 아니라는 불이불일(不二不一)의 중도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 지은이 다케무라 마키오(竹村牧男)
1948년, 동경에서 태어났다. 동경대학교 문학부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삼중대학 조교수, 궁파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양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대승불교사상, 일본불교사상, 서전(西田)의 종교철학 등이며, 유식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생 때부터 추월용민(秋月龍珉) 노사의 문하에서 참선을 배웠다.
저서로 『유식삼십송의 연구』, 『유식의 탐구』, 『화엄이란 무엇인가』(춘추사), 『정법안장 강의』, 『친란과 일편』, 『대승불교입문』, 『양관선생과 읽는 법화경』, 『불교는 참으로 의미가 있는 것인가?』, 『반야심경을 읽고』, 『인도불교의 역사』, 『선의 철학』 등이 있다.
- 옮긴이 권서용
부산대학교에서 불교인식 논리학의 대가인 다르마키르티 인식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부산대학교 등에서 철학과 윤리를 강의하고 있다. 현재 ‘다르마키르티사상연구소’를 열어 다르마키르티 사상을 국내에 알리는 데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 『깨달음과 자유』,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 평석: 종교론』 등이, 역서로 『무상의 철학』, 『인도불교의 역사』, 『대승기신론』, 『유마경』, 『불교인식론과 논리학』, 『근대일본과 불교』, 『티베트논리학』, 『불교인식론』, 『다르마키르티의 철학과 종교』, 『인도인의 논리학』, 『아포하』 등이 있다.
차례
발간사․5
시작하며 11
제1장 하나의 진실한 세계 19
유식은 유심론인가․19
식의 구조․22
식의 4분설․25
주객 미분의 세계․36
마음이 움직이다․40
꽃이 피고 대나무가 울리다․46
심불가득․52
제2장 언어와 존재 55
불립문자․55
불교의 언어철학․59
언어는 실재와 일치하지 않는다․65
언어가 적용되는 것은 식․71
다만 이것, 이것․82
제3장 수행의 길 91
미혹에서 깨달음으로․91
단계적인 유식의 길․92
선의 『십우도』․122
분석적인 유식관․130
구체적인 선의 길․138
제4장 자기가 있는 곳 147
철학적 이치(哲理)와 시․147
겨울과 봄․150
현상이 곧 실재․163
구체적인 세계에서 절대를 보다․170
제5장 지금을 살아가다 185
공간적 연기와 시간적 연기․185
큰 강물의 비유․187
찰나멸을 둘러싼 대론․189
연기는 가설된 것․192
현재에서 현재로․199
삼세심불가득(三世心不可得)․200
다이세츠의 선적 자유․207
인과에 어둡지 않다․210
제6장 생사를 초월하다 217
윤회는 있는가?․217
십이연기와 윤회․220
생사는 없다․232
자비와 서원에 의한 생사․243
‘신묘’한 삶의 방식․249
제7장 무공용의 경지 253
『능가경』과 『금강반야경』․253
움직이되 움직이지 않는다․262
무주처열반․275
제8장 불성과 부처 285
무자 공안․285
자기가 되게 하다․290
본유무루종자와 불성․300
사지(四智)와 불(佛)․304
지금․여기․자기의 부처․310
시정에 유희하다․320
후기․325
유식과 선의 계보․328
찾아보기․333
역자 후기․341
발행일 | 2024. 12.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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