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인으로 또 교육공무원으로 평생을 보낸 저자는 현직에서 은퇴한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조선시대 수난사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사 연구에 한동안 푹 빠져 지냈다. 원효를 만난 건 그 이후 경기 화성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런 만큼 『원효스님, 그 마음을 찾아서』에는 책의 부제인 ‘시인 이경렬의 구도자적 탐방 이야기’란 책의 부제에 걸맞게, 관련 사찰의 정보와 함께 시인의 감수성과 연구자의 관점이 돋보이는 글들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이경렬
평생을 미래 세대를 키워내는 공직자로, 삶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살아왔다.
1990년 《우리문학》으로 등단한 뒤로 4권의 시집을 내놓았는데, 절박한 순간에서도 마치 인생을 달관한 사람처럼 삶과 사랑을 노래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2014년 명예퇴직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조선시대 수난사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사 연구에 한동안 푹 빠져 지냈다. 이후 경기 화성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원효를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경기문학인상(2003년),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작품상(2011년), 경기 시조시인협회 작품상(2017년), 수원시인상(2022년), 한국시학 본상(2023년)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시집, 『내 강물의 거주지를 위하여』·『혼자 여행은 이따금 까닭 모르는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삶이 사랑이고 사랑이 삶이라고』·『산객』 등이 있으며,
수상록으로 백두대간 완주록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아있구나』
공저로 『화성지역학연구 』 제1, 2, 3, 4집이 있다.
책의 구성
이 책은 원효스님과 관련된 전국의 절과 절터[寺址]를 모두 순례하며 원효스님의 삶과 행적을 되짚어 본 수상록이자, 관련 사찰순례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이 책에 소개된 절과 절터는 107곳으로 전국을 9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1박2일 또는 2박3일의 코스로 탐방할 수 있도록 구성하여 순례의 편의와 효율성을 높혔다. 9개 권역과 세부적인 지역 분류는 다음과 같다.
1. 서울·경기권역: 경기 북부, 경기 중부, 서울 북한산, 경기 남동부
2. 강원권역: 강원 영서, 강원 영동, 강원 설악
3. 충청권역: 충청 서부, 충청 금산, 충청 남부
4. 경북 북부권역: 문경, 영주·봉화·울진,
5. 광주·전라권역: 전남 광주·나주, 전남 강진·고흥, 전남 지리산, 전남 여수, 전북 완주·진안,
전북 장수·부안
6. 경남권역: 경남 거창, 경남 남부, 경남 남해·창원, 통영 벽발산
7. 경상 중앙권역: 팔공산 영천, 팔공산 와촌, 경산 삼성산, 밀양·청도
8. 부산·경남권역: 부산 금정산, 수영·기장, 부산 기장, 양산 천성산
9. 경상 경주권역: 포항 비학산, 경주 함월산, 경주시
한편 탐방하는 각각의 절은 다음과 같이 3개의 챕터로 구성하였다.
일주문 앞에 서서 : 탐방하는 절과 관련된 필자의 에세이.
절로 가는 길, 절집 이야기 : 절의 역사와 현재 모습 등 사찰 안내.
원효스님의 행적과 사상 : 원효스님 관련 사료(史料), 신화, 전설 등 모든 것.
시인의 시각과 감수성이 잘 드러난 글
〈일주문 앞에 서서〉는 시인의 시각과 감수성을 잘 보여 준다.
절벽에 매달린 듯 메달린 듯 서 있는 북한산 원효암을 탐방하면서, 어느 여신도님의 “저기 저 앵두 따서 드세요. 맛있어요.”라는 말에 저자는 법정스님을 떠올린다.
“원효암은 일주문도 없고 여염집 대문 정도인데 그 옆에 앵두나무가 있다. ‘이런 높은 곳에 앵두나무가?’ 하며 보니, 빨간 앵두가 열려 있다. 나는 서너 개 앵두를 따서 입에 넣고, 초라한 승방으로 들어가는 여신도님의 뒷모습을 보며, 법정스님의 ‘청빈’이란 말이 떠올랐다. (52p)
심심치 않게 보이는 저자의 자작시를 읽는 기쁨은 덤이라 할 수 있다. 북한산 상운사 뜨락에서 의상봉과 원효봉을 바라보며, “나는 아직도 그 ‘단순함’을 넘지 못하고 화두처럼 붙잡고 있다.”며 쓴 다음의 시 또한 그러하다.
원효가 의상을 부를 때는 참으로 단순하였으리라
의상이 원효를 부를 때도 참으로 단순하였으리라
그 단순함을 깨우친 후
1340년을 건너오며
지금도 마주 앉았느니
그랬구나. 백운대에 서서
나는 저 도시의 엉클어진 그물망을
탈출한 줄 알았구나 (47p)
여수 향일암 관음전 처마 끝의 풍경소리를 들을 때는, 풍경은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수행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달아 놓지만, 한편으로는 화재 예방 차원의 기능도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불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사람이 끌 수 있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불은 어찌해야 할까. 원효가 요석궁을 나올 때, 요석공주의 가슴에서는 어떤 불이 일어났을까. 이 마음의 불을 스님은 어떻게 껐을까. 요석은 또한 어떻게 끄며 살았을까.”(206p)
그리고 좌선대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스님을 그리다가, 이에 겹쳐서 요석궁 깊은 궁중에서 홀로 앉아 있는 요석공주를 상상해 보는 저자의 관심은, 원효의 무애행과 그 속에 담긴 의미로까지 무한 확장된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겠는가(誰許沒柯斧). 내가 하늘을 받친 기둥을 찍으리라(我斫支天柱).”
『삼국유사』에 실린 요석공주를 향한 원효의 이 노래를 저자는 의식의 혁명을 요구한 노래로 추측한다.
“하늘을 받친 기둥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회 규범이나 사회 구조를 의미한다면 이것이 낡고 썩었으니 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역설적으로 비록 지혜(자루)는 부족하고 능력(도끼)이 없더라도 누군가(誰: 깨어있는 자)가 동조한다면(許) 깨부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까.”(339-340p)
저자는 원효가 종교와 세속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무애행으로 과감히 대중 속으로 들어가 백성들의 언어로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종교적 위로와 희망을 설파했다면, 이와 달리 출가자로서의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수행 정진, 제자 양성, 불사 건립과 같은 승려 본연의 삶에 충실하며 이 땅에 화엄종을 연 의상대사를 대비하며(303-304p) 두 스님의 서로 다른 사랑법을 논하기도 한다.(308p)
연구자의 관점에서 서술한 다양한 읽을거리
〈원효의 ‘해골물과 득도’의 진실〉처럼 연구자의 관점에서 쓴 글은 이 책이 단순한 탐방기가 아니란 것을 잘 보여 준다. 원효가 무덤 속에서 자다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 큰 깨달음이 있어 유학을 포기하고 경주로 돌아왔다는 중국의 문헌기록인 『종경록』(961년), 『송고승전』(978년), 『임간록』(1107년)을 검토하며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귀신 꿈을 꾸며 불안해 하다가 깨달았거나(송고승전), 시체 썩은 물을 마신 것을 알고 토할 것 같다가 깨달았다고(종경록, 임간록) 하였다. 이 중 『임간록』의 내용이 가장 널리 알려졌는데, 아마도 대중에게는 좀 더 극적이고 충격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 생각한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는 추정이다.”(75-76p)
원효가 해골물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 오도처에 대해서는 〈문헌 기록으로 본 원효의 오도처〉에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경기 화성의 당성과 그 일대의 고분군으로 추정하고 있다.(95-96p)
또한 이때의 무덤에 대해서도 〈‘원효의 오도’에 대한 생각〉에서, 당성 일대의 고분군 형식을 제시하며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지고 방치된 옛 무덤에서 원효와 의상이 밤을 지샜을 가능성도 추정하고 있다.
“당시 당성 일대 무덤 양식은 횡렬식 석실 고분이었다. 횡혈식 석실 고분은 2인 이상의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긴 널길이 있는 부부 또는 가족 합장묘였다. 무덤 내부를 방처럼 꾸미고 입구부터 긴 통로를 따로 만들어 두었다.”(85-86p)
661년(문무왕1) 원효가 창건한 경북 경산 반룡사에서는 당시 압량주였던 경산이 신라군의 모병훈련소가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며 원효가 반룡사에 머물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반룡사는 원효의 주석처로도 알려져 있다. 요석공주가 남편을 만나기 위하여 어렵게 수소문하여 반룡사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무열왕 내외도 이때 몰래 경주에서 산내 지역과 지금의 반룡사까지 와서 딸 요석과 손자 설총을 만났다고 한다. 신라 왕 내외가 경주와 경산을 잇는 지름길인 이 산을 넘어왔다 하여 왕재란 지명도 유래되었다.”(332-333p)
또 『삼국유사』의 “원효가 일찍이 살던 혈사(穴寺) 옆에 설총이 살던 집터가 있다.”는 기록을 들어, “혈사는 곧 굴[穴]로 된 절[寺]이다. 혈사에 원효가 머물렀고, 여기에서 입적하자 아들 설총이 아버지를 기려 골굴사에 와서 살았다는 해석”이라며 경주 골굴사를 혈사로 추정하고 있다.(421p)
이밖에도 원효가 입적한 뒤, 그의 아들 설총은 아버지의 유해와 흙을 섞어 소상을 만들어 이 절에 모셔 두고 죽을 때까지 공경하였으며, 그 소상이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까지도 있었다는 분황사를 탐방하면서, 비부(碑趺, 받침돌)만 남은 화쟁국사비가 추사 김정희의 고증에 의해 밝혀졌다는(431p) 이야기 등을 잔잔하게 풀어 놓았다.
이렇듯 『원효스님, 그 마음을 찾아서』는 원효스님을 들려주고 있지만, 원효뿐만 아니라 당시의 역사와 사상은 물론 당시를 살았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 놓고 있다. 원효스님에 대한 관심, 당대 신라인들의 삶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 보아야 할 필독서라 할 수 있다.
발행일 | 2024. 9.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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