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합리적이야!” “난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난 나야!”라고 말하는 서양인들에게
…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에게
법상에 올라선 텐진 빠모 앞에는 크게 세 부류의 서양인이 앉아 있다. 우선 불교를 처음 접해본 사람들이다. 불교 교리는 물론 수행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온갖 의문 또는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이제 명상을 시작해보겠다 다짐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다. 우선 왜 수행하는지, 어떻게 수행하는지, 그리고 수행을 어떻게 일상으로 가져올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다. 수행에 익숙할 뿐 아니라 명상을 통해 한걸음 깊이 들어가 봤던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중간중간 느꼈던 자신의 ‘체험’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이다.
텐진 빠모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자신의 체험, 옛이야기, 그리고 경전에 있는 내용들을 섞어가며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고 이들의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서양인들이 맨 처음 불교를 접할 때 보이는 반응 중 하나는 ‘믿을 수 없다.’이다. 윤회나 환생은 물론 명상이나 이를 통해 다다르는 차원의 경지나 깨달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나서 자신은 증명되지 않은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이라고 자처한다. 하지만 진정 합리적이라면 열린 마음도 가져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 텐진 빠모는 이제 막 불교를 접하고 특정 내용을 마주쳐 주의 깊게 조사해 봤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도 그것이 불법(佛法)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한다. 텐진 빠모 역시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티베트불교 안에서 전혀 수긍하지 못하는 것들이 발견된다고 솔직히 말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특정 교리와 내가 연결점이 없다는 걸 이해하고 그냥 잠시 옆에 밀쳐놔 둘 수도 있다. 거리낌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다만, ‘이건 아니지, 이건 진실이 아니야.’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지금 이 시점에서 내 마음이 이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오히려 이런 방식이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다. 어떤 지혜의 책을 수년간 읽고 또 읽어도, 읽을 때마다 마치 새로운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마음이 열림에 따라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더 깊은 층의 의미들을 발견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해하지 못했던 걸 언젠가 나중에 다시 이해할 수도 있다. 처음 불교를 접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이제 막 명상을 실천하고 싶은 서양인들의 관심사는 ‘화’다. 많은 서양인이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법문을 듣고 명상을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자신과 화해를 해야 한다. 텐진 빠모는 서양에서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단점은 빠짐없이 알지만, 자신의 선한 점은 알려고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난 정말이지 화가 너무 많아.”라고 얘기하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속마음으로조차 ‘나는 화가 많아. 하지만 또한 관대한 사람이기도 해.’라고 말하려 들지 않는다. 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지만 그 전에 우선 자신과 화해하지 않으면 아무리 법문을 듣고 명상을 해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이제 어느 정도 수행에 익숙한 서양인들이 보이는 특징도 있다. 명상의 대상과 명상하는 자를 자꾸 나누어본다는 점이다. ‘여기 내가 있고, 여기 수행이 있고, 내가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산봉우리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고는 어째서 진전이 없는지 의아해한다. 하지만 본래 마음이란 그 대상과 함께 생멸하게 되는데, 마음을 수행과 계속 따로 떼어 놓으면 합일(合一)이 일어날 리가 없다. 명상을 얼마나 오래 했든 상관이 없다.
텐진 빠모의 강의 그리고 청중 사이에 오가는 질문과 답변을 읽다 보면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가며 불교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한국인들에게 더 걸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티베트불교의 ‘역사’가 된 영국 출신 비구니 텐진 빠모
매년 연말이면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영감을 주는 여성 100인’을 선정한다. 지난해(2003년)에는 전 미국 대통령 영부인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를 비롯해 성별 임금 격차 연구로 200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자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 등이 꼽혔다. 그런데 100인 중 유일하게 종교인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텐진 빠모다.
제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영국에서 태어난 다이안 패리(Diane Perry, 텐진 빠모의 출가 전 이름)는 열여덟 살에 처음 불교를 접하고 스무 살이 되던 1963년 인도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스승을 만난 그녀는 1964년 사미니계를 받고 텐진 빠모라는 법명을 받았다. 마침내 1973년에는 비구니계를 받으며 ‘서양인 여성 최초 티베트불교 비구니’라는 호칭을 얻었다. 불교국가 대부분에서 그렇듯이 비구(남성) 중심의 불교 교단에서 텐진 빠모는 ‘여성’과 ‘서양인’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었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특이한 이력’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1976년 그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인도 라훌의 외떨어진 작은 동굴에서 ‘집중 수행’에 들어간다. 집중 수행은 1988년까지 12년간 이어졌고, 마지막 3년은 아예 외출조차 삼가고 폐문 수행을 했다. 히말라야의 추위와 눈보라는 물론, 한 사람이 눕기에도 좁은 동굴에서 고독과 싸워야 했으며, 수행의 진전이 느릴 때는 낙담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걸음 발을 내딛게 된다. ‘여성’과 ‘서양인’이라는 경계는 물론 ‘수행’의 경계까지 넘어 마침내 성취를 이뤄낸 것이다. 이후 그녀의 행보는 티베트불교에서 여성의 지위는 물론 서구에 불교의 씨앗을 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BBC에서의 선정 의도대로 ‘영향력’과 ‘영감’ 모두를 갖췄던 것이다. 2008년에는 제12대 걀왕 드룩빠(Gyalwang Drukpa)로부터 ‘깨달음’을 인정받으며 제쭌마(Jetsunma, 위대한 스승)라는 호칭도 얻었다.
이 책은 그녀가 1988년 동굴에서 나와 2000년 인도의 히말라야에 비구니 수행처인 동규가찰링(Dongyu Gatsal Ling) 사원을 만들어 주석하기 전까지 유럽과 북미 그리고 오세아니아 등 ‘서양인’을 위한 포교 활동하며 진행했던 법문 중 1996년과 1997년 미국, 그리고 1998년 호주에서 진행되었던 강의들을 편집한 것이다.
왜 명상을 하고,
어떻게 명상을 하고,
궁극에는 어떻게 명상을 ‘일상’과 접목할 것인가
‘강의’는 인도 히말라야에서 12년의 수행을 포함해 30년 넘는 텐진 빠모의 수행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딜 가나 법상 밑에 앉은 서양인 청중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녀가 강연의 대강으로 삼은 것은 △왜 명상을 하고 △어떻게 명상을 하고, △어떻게 명상을 ‘일상’과 접목할 것인가였다.
현대인, 특히 서구인들은 왜 명상에 열광을 할까? 거개는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불안과 초조를 진정시키려는 이유다. 물론 이게 명상을 배우는 동기로서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조금만 명상에 취미를 붙여도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텐진 빠모는 한 걸음 더 나가, 아니 궁극적으로 명상의 목적은 자기 내면을 바라보고 우리가 진정 무엇인지, 그리고 마음이 진정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라고 명토박아 말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가다 보면 마음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그 기능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내어, 세속을 뛰어넘는 의식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잠시 돌로 풀을 눌러 놓기보다는 김매는 것처럼 풀을 뽑아버려야 불안이나 초조 같은 싹을 없앨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제 불교를 막 배운 일반인들에게 출가한 수행자처럼 종일 좌복을 깔고 앉아 있으라는 무리한 주문을 하지는 않는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작업에 20~30분, 그리고 내면을 관찰하는 30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명상의 방법에 대해서도 텐진 빠모는 ‘불교 백화점’이라는 티베트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수행자답게 다양한 길을 제시한다. 사마타나 위빠사나 같은, 테라와다불교의 전유물로 알려진 수행법에 대해서도 총 열네 장의 분량 중에 각각 한 장씩을 할애하고, 티베트불교 수행 중에 일반인도 충분히 해볼 만한 통렌(Tonglen)이나 시각화 명상에도 각각 한 장씩 할애해 소개하고 있다. 중간중간에는 선(禪)불교 수행이나 선사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물론 왜 명상을 하고, 어떻게 명상하는지 잘 알고 체화했다고 해도 이것을 일상과 접목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꽤 많은 사람이 명상하는 동안에는 행복과 평화, 때때로는 불이(不二)의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명상에서 깨어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텐진 빠모가 수행과 일상의 조화에서 열쇳말로 꼽는 것은 바로 ‘화’다. 욕망이나 집착을 없애는 것도 중요한 수행이지만 현대인들, 특히 서양인들에게는 거부감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강의 분량만큼 많은 문답들로 구성되어 있다. 청중은 솔직한 질문을 하고 텐진 빠모는 답변을 한다. 실은 독자가 궁금했던 내용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는 단지 학문적인 호기심에만 머물거나 우리 일상의 상황에 적용하기에 너무 동떨어진 내용이 아닌, 실제 유용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최대한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대부분 일상적인 용어를 쓰고, 평균적인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자가 하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애썼다.
20년 만에 완역판으로 만나는 텐진 빠모의 대표작
이 책은 텐진 빠모의 대표작으로, 2002년 미국에서 발매돼 여전히 독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2004년 『마음 공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한 차례 출간된 적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총 14장 중 두 개의 장(13장과 14장)은 아예 번역되지 않았으며, 번역된 장 중에서도 본문과 묻고 답하기 부분이 대거 삭제된 채 출간되었다.
이번에는 번역 출간은 2023년 미국에서 재발간된 판본을 기준으로 누락된 장과 문장이 없이 모두 번역됐으며 첫 출간 당시 정착되지 않았던 티베트불교 용어와 발음도 모두 바로 잡았다.
여전히 이 책의 재출간을 학수고대하던 기존의 독자는 물론 불교 수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독서의 기회 그리고 발심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 글쓴이 / 옮긴이
글쓴이 / 텐진 빠모(Jetsunma Tenzin Palmo)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영국 런던 남부에 인접한 하트퍼드셔(Hertfordshire)에서 태어났다. 열여덟이 되던 해 처음 불교를 만났고, 스무 살이 되던 해 배를 타고 인도로 건너갔다. 인도에서 스승 캄뚤 린뽀체를 만나 1964년 사미니(sramanerika) 계를 받고 텐진 빨모라는 법명을 받았다. 1973년 비구니계를 받으며 ‘서양인 여성 최초 티베트불교 비구니’라는 호칭을 얻었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12년 동안 인도 히말라야 라훌의 외떨어진 동굴에서 집중 수행에 들어갔다. 마지막 3년은 아예 외출조차 삼가고 폐문 수행을 했다. 동굴을 나온 1988년부터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등을 순회하며 서양인 불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불법 홍포와 함께 인도에 비구니 수행처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2008년에는 제12대 걀왕 드룩빠(Gyalwang Drukpa)로부터 깨달음과 여성 수행자 지위 향상에 대한 인정을 받아 제쭌마(Jetsunma, 위대한 스승)라는 호칭을 받았다.
1988년부터 시작된 순회 법회는 2022년 마무리했으며 지금은 2000년 세운 인도 히말라야의 비구니 수행처 동규가찰링(Dongyu Gatsal Ling) 사원에서 120여 명의 비구니와 함께 수행하며 교육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2003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영감을 주는 여성 100인’에 종교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텐진 빠모를 선정했다.
옮긴이 / 김윤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형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동서양의 정신적 가르침과 관련된 책을 좋아해 언젠가부터 원서들을 뒤적거리며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우리말로 옮겨 지인들에게 전하곤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번역가 직함까지 달게 되었다. 옮긴 책으로는 『서양인을 위한 불교 강의』(2024), 『관계에 능숙해지는 법』(2024), 『고요히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2022), 『뉴로다르마』(2021), 『모든 발걸음마다 평화』(2021), 『메타휴먼』(2020), 『자네, 좌뇌한테 속았네』(2019), 『하마터면 깨달을 뻔』(2017) 등이 있다.
▦ 목차
서문 007
- 푸른 눈의 수행자
- 발심(發心)과 수행
- 불교 윤리 -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기
-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여섯 가지 세계[六道]
- 여성과 수행의 길
- 사마타 수행 - 고요 속에 머물기
- 위빠사나 -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 알아차림
- 서양인을 위한 특별한 가르침
- 통렌(Tonglen) - 주고받음의 수행
- 마음의 본성
- 영적 스승의 역할
- 밀교
- 시각화 명상
▦ 책 속으로
문_ 욕망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답_ 그건 당신이 욕망을 어떤 뜻으로 말씀하셨는지에 달려있습니다. 깨달음을 향한 욕망은 좋은 욕망이죠. 우리가 그걸 없애길 원하지는 않아요. 문제는 일상의 욕망이 늘 우리를 속인다는 데 있습니다. 우린 만일 이런저런 욕망을 충족시키기만 한다면 행복해질 거라고 늘 상상합니다. 하지만 세속적인 욕망은 바닷물 같은 겁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이 커집니다. 욕망 그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거기 붙는 우리의 집착이 진짜 문제인 거지요. 여러분들이 궁전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 큰 저택에서 살 수도 있죠. 롤스로이스를 아흔아홉 대 소유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아무 집착이 없다면, 가령 내일 당장 모든 것을 잃었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당신이 정말 당혹스러워하고, 되찾기 위해, 방어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갖기 위해 온통 시간을 쓰고 있다면, 그건 큰 문제라는 겁니다. 무엇을 얼마만큼 가졌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거기 매달리고 흘려보내지 못하는 거예요. 이는 물건뿐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것도 포함됩니다.
191쪽 「사마타 수행 – 고요 속에 머물기」 ‘묻고 답하기’ 중
생각과 감정을 갖는다는 점이 문제가 아니에요. 생각과 감정이란 마음에 있어 자연스러운 겁니다.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는 게 당연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문제는 우리가 그것에 신념을 부여하고, 그것과 동일시하고, 그것을 부여잡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만약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저 지나가는 정신적 상태로 보면 그 속성상 투명하기에, 지혜롭기 그지없는 마음의 장난이기에,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파도처럼 일어났다 사라질 뿐입니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하지 않죠.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올라오면 그 즉시 거기 올라탑니다. 그것을 부풀리고, 거기 푹 빠지고, 반복해서 그것을 지속하게 만들어요. 동일시하고, 끝없이 곱씹고, 걱정합니다. 행여 좋지 않은 일이라면 스스로 자책합니다. 그저 흘려보내질 않아요.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 기억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합니다. 우리는 기억에 극도로 집착하는데, 이는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으로 정의된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그 기억이 고통스러운 것일지라도 여전히 그것들을 흘려보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이게 나야.’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기억일는지는 몰라도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이미 가버리고 없어요. 대체 어째서 그것들을 부여잡고 우리의 자아상으로 삼아야 합니까? 하지만 우린 그렇게 하죠.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하기에 고통당합니다.
204쪽 「위빠사나 –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중
제 생각에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애 명상은 서양 사람들에게 특히 유용합니다. 왜냐하면,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하신 말씀을 빌자면, 서양인들과 티베트 사람들 간의 커다란 차이점 중 하나가 티베트 사람들은 누구도 예외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꽤 좋은 감정을 느끼지만, 그분께서 만난 서양인들은 자기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답니다. 때로는 자신을 증오하기도 했고 스스로에 대해 아주 가차 없었다고 합니다. 성하께서는 이를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우리가 분노를 없애려 할 때 해야 할 첫 번째 작업은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향한 화를 간직한다면, 이 화가 타인을 향한 분노로 변하지 않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겠죠. 분노의 근본적인 원인, 그러니까 내적인 충돌 가령, 스스로에 대한 증오, 죄책감, 또는 비난을 그대로 유지한 채 원수들을 사랑하겠노라고 결심한다면 그렇게 될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첫째로 자기 자신에 대해 정말로 우호적인 감정을 품고 연민을 가지는 받아들임 작업부터 해야 해요. 우리는 본래부터 모든 존재들에게 사랑과 자비심을 가지게끔 되어있습니다. 그중에 책임질 첫 번째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인 거죠. 스스로 친절해야만 합니다. 서양에서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너무 가혹합니다. 자신의 단점은 빠짐없이 알지만, 자신의 선한 점은 알려고 들질 않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난 정말이지 화가 너무 많아.”라고 얘기하며 행복해합니다. 하지만 속마음으로조차 ‘나는 화가 많아. 하지만 또한 관대한 사람이기도 해.’라고 말하려 들지 않아요.
273쪽 「알아차림」 중
당연히 최초 일별은 아주 중요합니다. 제 스승님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셨어요. “그건 네가 꾸불꾸불 이어진 산길을 따라 어떤 마을로 여행을 떠난 것과 같다. 처음에 넌 이 길이 실제로 그 마을로 이어졌을지 확신하지 못하지. 심지어 그 마을의 존재 자체에도 확신이 없어. 그저 거기 마을이 있다고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넌 이 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결국 거기 도달할 거라고 자신하지. 가는 길에 몇몇 표지판들은 있어. 어느 날 산모퉁이를 돌아 나온 순간, 저기 멀리
그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이는 네 여정에서 엄청난 돌파구일 게야. 이제 넌 마을이 진짜로 존재함을 안다. 이제 넌 이 길이 마을로 이어져 있음을 알아. 길이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때로 마을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보일 때마다 그것은 조금씩 가까워지지. 그러나 아직 마을에 도착한 건 아니다. 그저 마을의 모습을 스쳐본 것들이었을 뿐이지. 하지만 계속 간다면 어느 날엔간 네가 그 마을에 도착할 거다. 그리고 거기서 살 수 있겠지. 그러면 네가 바로 부처님이다.”
363~364쪽 「마음의 본성」 중
무엇보다 우선, 창조적 상상의 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에는 여러 층이 존재합니다. 표면에 가까울수록 언어에 반응합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말보다는 이미지에 반응해요. 마음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언어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미지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수용적입니다. 이들 이미지는 훨씬 더 깊은 층으로 스며들며 변용을 끌어냅니다. 그저 표면적일 뿐인 개념들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에요. 자비로운 생각들을 예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가령 타인의 고통을 대신 짊어진다든가 모든 존재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게 있겠죠. 이런 것들은 어느 한 층에서는 동기부여가 되는 좋은 수행이지만 마음의 모든 층에 이르기까지 스며들며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아주 원시적인 마음은 이 모든 것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그런 생각들은 지성의 수준, 즉 저 위쪽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맴돌 뿐입니다. 마음을 완전히 변용하려면 훨씬 더 깊은 층들에 가 닿을 방법이 필요한 겁니다. 이는 이미지들을 이용함으로써 가능해요. 융 학파의 심리학에서 어째서 이미지들로 만들어진 도구들을 그렇게나 많이 사용하는지가 일례가 될 겁니다.
453쪽~453쪽 「시각화 명상」 중
발행일 | 2024. 11.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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